어릴 때는 부모님이 늙는다는 사실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부모님은 늘 그 자리에 계셨고, 언제나 나보다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감기에 걸려도 금방 일어나셨고, 새벽부터 일을 하셨고, 가족들을 위해 평생을 쉬지 않고 살아오셨습니다.
그래서 마음 한구석에는 이상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계속 건강하게 사실 것 같다는 믿음.
그 믿음은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의심해 본 적조차 없었습니다.
하지만 인생은 우리가 준비가 되었는지를 묻지 않고 찾아옵니다.
몇 달 사이.
우리 집에는 믿기 힘든 일들이 연달아 일어났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여동생까지.
가족 세 사람이 모두 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설마.’
‘검사가 잘못된 건 아닐까.’
‘조금 지나면 괜찮다고 하지 않을까.’
사람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 앞에서 희망부터 찾으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병원이라는 곳은 희망만 이야기하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현실을 알려주는 곳이었습니다.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인생은 행복한 일보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을 견디는 시간이 더 많을 수도 있다는 것을.
예전에는 병원에 가면 의사에게 치료를 받는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이 아프신 뒤에는 병원이 전혀 다른 곳으로 느껴졌습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곳.
숫자 하나에 하루의 기분이 달라지는 곳.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가슴이 철렁하는 곳.
검사 날짜를 달력에 적어 놓고,
며칠 전부터 괜히 마음이 무거워지고,
결과를 듣기 전까지는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 곳.
특히 PET-CT 결과를 기다리던 시간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시간은 똑같이 흘렀는데 하루가 일주일처럼 길었습니다.
좋은 결과가 나오기만을 바라며 기다리는 시간.
그 기다림도 가족이 함께 감당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예전에는 부모님께 맛있는 것을 사 드리는 것이 효도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무엇이 몸에 좋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먼저 찾아봅니다.
어디에서 파는지,
믿을 만한 제품인지,
혹시 도움이 될 수 있는 음식인지.
인터넷을 뒤지고,
주변 사람들에게 묻고,
병원에서 들은 이야기를 다시 찾아보고.
좋다는 것은 하나라도 더 보내드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또 하나를 깨달았습니다.
먹는 것 하나가 병을 낫게 해 주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그래도 보내게 됩니다.
혹시라도 도움이 될까 봐.
조금이라도 기운을 내실까 봐.
그 마음 하나 때문입니다.
이제는 병이 완전히 나았으면 좋겠다는 욕심보다,
지금 상태만이라도 오래 유지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커졌습니다.
예전에는 그런 기도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압니다.
유지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축복인지.
어머니는 평생 자기주관이 강한 분이셨습니다.
무엇이든 직접 하려고 하셨고,
누군가 집안일을 도와주는 것을 정말 싫어하셨습니다.
남이 우리 집에 와서 일을 한다는 것 자체를 불편해하셨습니다.
그래서 요양사를 모셔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도 걱정이 많았습니다.
과연 받아들이실까.
불편해하시지는 않을까.
혹시 더 힘들어하시지는 않을까.
그런데 다행히 좋은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성격도 밝고,
말도 따뜻하게 해 주시고,
어머니를 가족처럼 챙겨 주셨습니다.
식사도 도와드리고,
생활도 살펴드리고,
웃으며 이야기도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처음으로 마음이 조금 놓였습니다.
나는 부모님과 편도 74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살고 있습니다.
병원도 오가야 하고,
부모님 댁도 들러야 합니다.
왕복하면 적지 않은 거리입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한 번도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운전이 힘든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힘드신 것이 더 마음 아팠기 때문입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몇 번이고 갈 수 있습니다.
오히려 멀리 산다는 사실이 늘 마음을 무겁게 했습니다.
당장 달려갈 수 없다는 미안함.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
늘 마음 한편이 부모님 댁에 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양사 선생님이 계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습니다.
내가 없을 때도 누군가 따뜻하게 어머니를 돌봐주고 있다는 사실.
그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어머니를 보면서 가장 마음이 아픈 순간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무엇이든 본인의 뜻대로 하려고 하셨습니다.
가끔은 가족들이 답답할 정도였습니다.
‘조금만 양보하시면 좋을 텐데.’
‘조금만 유하게 생각하시면 좋을 텐데.’
그런 생각을 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릅니다.
예전처럼 말씀하실 힘도 줄어들고,
기운도 예전 같지 않으십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차라리 예전처럼 고집을 부리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 고집조차 건강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을.
지금은 그 모습마저 그립습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숨을 크게 쉬면 가슴이 아프다며 응급실로 향했던 날.
수술이 필요하지 않다는 연락을 받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던 기억.
나이가 들수록 병은 한 가지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병원은 점점 익숙한 곳이 되었지만,
결코 익숙해지고 싶지는 않은 곳이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 세상 누구도 시간을 거스를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돈도,
명예도,
젊음도,
결국 시간 앞에서는 모두 같은 사람입니다.
그래서인지 부모님과 함께하는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당연했던 식사 한 끼.
평범한 전화 한 통.
함께 웃던 시간.
그 모든 것이 사실은 당연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후회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미루지 않으려고 합니다.
병원도 함께 가고,
좋다는 음식도 보내드리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바로 준비하고,
시간이 나면 부모님을 찾아갑니다.
누군가는 힘들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하나도 힘들지 않습니다.
힘든 것은 부모님이지,
제가 아닙니다.
내가 조금 더 운전하는 것이,
조금 더 시간을 내는 것이,
어떻게 부모님의 고통과 비교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오늘도 달려갑니다.
어쩌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병을 대신 앓아드릴 수도 없고,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곁에 있어 드릴 수는 있습니다.
손을 잡아드릴 수는 있습니다.
같이 병원에 갈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해드릴 수는 있습니다.
부모님이 아프시기 전에는 몰랐습니다.
효도는 특별한 날에 큰 선물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비싼 음식을 사 드리는 것도,
용돈을 많이 드리는 것도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진짜 효도는,
필요할 때 곁에 있어 드리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젠가는 이 글을 다시 읽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그때의 나는 어떤 마음일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지금,
후회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부모님을 떠올릴 때,
‘그때 조금만 더 잘할 걸.’
이라는 후회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다했다.’
라는 마음으로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모님은 제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제는 제가 부모님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게 만들어 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이 지금의 제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